교내 학회에서 진행했던 쿠플라이 프로젝트(https://kupply.devkor.club/)를 계기로, 학회 OB 선배님이시자 현재는 한 스타트업 CTO (초기 창업멤버) 로 근무하고 계신 분과 깊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에 온라인으로 선배님과 짧은 커피챗 시간을 한 번 가졌다. 그런데 그때 들은 말씀 중 유독 내 머리 속에 남아 빙빙 도는 말이 있었다. 내가 선배님 회사 내 ML 엔지니어 직무와 PM 직무에 대해 여쭤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 말의 기저에 어떠한 생각이 깔려있었는지 궁금했다. 이에 선배님과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 선배님께 한 번 더 오프라인 커피챗을 요청드렸다. 감사하게도 선배님께서는 흔쾌히 수락하시며 바로 일정을 잡아주셨다.
나는 이때 한창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취업도 구체적으로는 PM 직무로 준비를 할 것인지, 혹은 ML 엔지니어, MLOps 엔지니어와 같은 개발 직무로 준비를 할 것인지에 대해 정말 고민이 많았다. 선배님 또한 회사를 운영하시며 궁극적으로는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하신다는 말씀을 얼핏 들은 것 같아 더욱 만나뵙고 싶었다. 나의 고민들을 가득 안고, 선배님께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커피챗을 요청드린 것도 있었다.
윤진님은 ML 엔지니어보다는 PM 이 더 잘 맞을 것 같아요.
이 말이 바로, 내 머리속을 빙빙 돌던 말이었다.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 굉장히 벙쪘다. 억울함 이라는 감정도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이유에서 선배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걸까?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 분께 내 아무런 자료도 보여드린 적이 없었다. 이 분은 내 코드를 본 적도 없었고,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전혀 모르셨다. 그저 단편적으로 몇십 분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나는 처음에는 이 말의 기저가, 결국 내가 '경영학과'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경영학과라는 나의 본전공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겨버린 듯 하다.
나의 본전공만 보고, 내가 경영학과이기 때문에 이렇게 확정적으로 판단하시는 것 같이 느껴져 사실 굉장히 속상했다. 실제로 온라인 커피챗을 마치고 조금 훌쩍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경영학과 프레임을 절대 벗을 수가 없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선배님께 직접 가서 여쭤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선배님을 대면으로 만나뵌 날, 이 질문을 먼저 드렸다. 선배님과 만나서는 함께 식사를 하고, 카페를 갔었는데 내가 선배님께 여쭤보고 싶은 부분들이 정말 많았었기에 모든 시간들이 이야기로 꽉 채워졌다. 아래는 나눈 대화들 중, 내가 인상깊었던 몇가지 부분들만 기록해보려 한다.
1. 그 말의 생각의 기저
선배님 曰) 단순히 경영학과라서 그렇게 말했다고, 오해했을 수 있겠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윤진님이 AI 관련해서도 꽤 깊게 공부하신 모습을 보고 말씀드린 것이다.
(+ 쿠플라이 프로젝트로 보여진 기획 능력 등을 종합하여)
시장에서 ML 을 이해하고 있는 프로덕트 매니저를 찾기 쉽지 않다. 그래서 그 가치고 높다고 생각했다.
2. 직업 선택의 기준
나 曰) 취업을 한다면 PM 직무를 준비할지 개발자직무를 준비할지 고민된다.
선배님 曰) 윤진님의 직업 선택 기준이 무엇인가 말해달라.
사실 나도 누군가(후배 친구들)에게 진로 관련 조언을 할 때면, 너의 직업 선택의 기준을 먼저 수립하고 고민해보아라 라고 종종 말했었는데, 정작 나는, 그 해답이 쉽게 나지 않기에 늘 그 고민을 뒤로 미뤘었던 것 같다. 이때 이 질문을 듣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정말 기본적인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을 때, 나에게는 이 세가지가 중요했다.
(1) 페이 (=남들의 인정)
(2) 일에 대한 주체성 (=나의 일을 하는 것)
(3) 창업을 위한 네트워크의 확장
2-1. 페이
사실 페이 측면에서는 비즈니스 직군(문과 직군)보다 테크 직군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니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실 지난 카카오 인턴십 지원 때도 굳이 굳이 테크 직군을 지원한 듯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액수가 그 사람을 얼마나 귀히 여기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는 엔지니어를 더 귀히 대접해주는 것 같고, 해당 직군이 보다 더 대체불가능하게 여겨져 여지껏 테크 직군을 고집해왔다. 나도 남들이 귀히 여기는, 잘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선배님께서는 曰)
엔지니어는 PM 에 비해 그 사람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정량적 요소가 비교적 뚜렷한 데 반해 PM 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또한 PM 과 관련해 해당 직무가 너무 애매하게 느껴진다고 말씀드렸더니, 선배님 曰)
시장에 그런 어중이 떠중이 같은 PM 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PM 은 특히나 회사를 잘 선택해야 한다. 회사에 따라 그가 맡게되는 업무가 매우 상이해지기 때문이다. 혹시 토스는 관심없는가, 거기가 PO 나 PM 으로 유명하던데 (이에 대해서는, 내가 토스를 전혀 사용하지 않다보니 토스는 망설여지게 된다고 답했다.)
2-3. 창업을 위한 네트워크의 확장
이 부분에 있어서 선배님께 내가 원하는 것을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하다가, 선배님께서 한 마디로 정리해주셨다. 머리를 띵-하고 치는 기분이었다.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윤진님은 본인이 CEO 를 하고, 함께 창업할 (공동창업자) CTO 를 찾고 싶은 거군요.
이에 대해서 선배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선배님 曰) 기술은 있는데 그것을 비즈니스화하는 것 또한 굉장히어려운 문제이다. 윤진 님이 꼭 엔지니어가 되지 않더라도, 정말 똑똑한 PM 이 되면 오히려 기술이 있는 엔지니어가 더욱 윤진 님과 같이 창업하고 싶다고 줄을 설 수도 있다. 자신은 제가 똑똑해지면 제 주변으로 똑똑한 사람이 모이게 되어있다고 믿는다.
3. 선배님의 창업 이야기
선배님은 사이버국방학과 출신의 17학번 선배님이셨다. 사실 그래서 나와 나이차이도 3살밖에 나지 않는다. 졸업 이후 바로 이 회사를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선배님께 지금 이 회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공동창업자 (지금의 CEO님)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여쭤봤다.
선배님 曰)
지금 대표님은 고등학교 18년 선배님이시다. 고등학교 동문 사이트가 있는데, 다시 한번 과학고 인들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해당 사이트에서 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만나게 되었다. 저는 이미 학부 다닐 때, 한 회사 3개 정도를 다녀본 상태였다.
자신이 4학년 1학기일 때쯤, 지금 대표님께서 동업을 제안해주셨다. 6명 의자있는 사무실에서 둘이 앉아서 처음 시작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딱 1년만 열심히 해보자 생각했었는데 벌써 3년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군대 이슈로 인해 CEO 는 지금 대표님이 맡게되었다.
4. 선배님의 커리어 이야기
선배님 曰) 학부 다닐 때부터 개발부터 인공지능(컴퓨터 비전)까지 굉장히 다양한 공부를 했다. 현재 회사에 평생 머무를 생각은 아니다. 이후에 미국의 빅테크 기업(엔비디아, 테슬라, 애플 등)에 가서 일해보고 싶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엔비디아가 1순위다. 굳이 엔비디아인 이유는, 엔비디아가 오랫동안 하드웨어 로우레벨의 개발부터 시작해서 여러 영역을 개발해 온 회사로, 굉장히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기술력 보고서 가는 것이다. 가면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 선배님께 회사의 C-level 으로서 본인의 현생과 어떻게 밸런스를 맞추고 계신지 여쭤봤다.
선배님 曰) 쉽지 않다. 일하는 시간은 사실 C-level 이다보니 홀로 밤 10시에 퇴근할 때도 잦다. 주로 주기를 두고, 집중해서 일하는 달과 그렇지 않는 달을 두는 것 같다. 집중할 때에는 주 7-80시간 일할 때도 있다. (허허 아직 주 100시간은 일 안해본 것 같아요.)
5. 나는 돈이 벌고 싶은 사람인가, 임팩트를 내고 싶은 사람인가
윤진님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애플과 오픈AI 중 어디에서 더 일해보고 싶으세요?
선배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긴 고민 없이 오픈AI 를 선택했다. 나의 선택을 보고서 선배님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배님 曰) 오픈 AI 를 선택하는 것보면, 윤진님은 꼭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라기보다는 영향력을 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제품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엔지니어링을 하는 것도 맞는 것 같다.
그렇다. 애플은 성공적인 제품을 대변하는 것이고, 오픈 AI는 혁신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선배님의 말씀이 또 한번 내 머리를 띵- 하고 치고 지나갔다. 나는 돈이 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임팩트와 혁신을 내고 싶은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며, 내가 평소에 궁금했던 (선배님 회사 다니시는) 어떤 분의 비전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여쭤봤는데, 그 분도 선한 영향력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단다. 오늘 만난 선배님은 회사 다니면서 (힘들지만) 석사를 마치셨다는데, 여쭤본 그 분도 동일한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다.
6. 채용에서 뽑고 싶은 사람
선배님 회사는 사실, 매 학기마다 학교 현장실습에 공고가 올라와 이름은 많이 들어봤었다. 들어보니, 선배님께서는 테크 리드이신만큼 본인이 모든 테크 직군 리크루팅을 총책임하고 계신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선배님께 어떤 사람이 제일 뽑고 싶고, 뽑고 싶지 않은지 여쭤봤다. 그랬더니 선배님 曰)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제일 싫다. 오히려 (서류는) 심플한테 알찬 사람도 있다.
그리고 장난반 진심반으로 선배님께서 자신은 하도 지원서류를 많이보니, 나중에 취업할 때 서류(자기소개서 혹은 이력서, 포트폴리오 등) 보내드리면 첨삭해주시겠다고도 말씀하셨다.
마무리.
선배님의 마지막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선배님)
10년 뒤의 윤진님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대되네요. 34살의 오윤진.
그리고 결국 오늘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열린 결말로 남았네요.
(나)
원래 답이 없는 질문이었으니까요.
이 날 하루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 대화들로 말미암아 마음에 힘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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